ㅇ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
“‘고독한 사람은 야수이거나 신'이라고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했다.”(지적인 사람들을 위한 보수주의 안내서, p.71)
기독교적 관점 : 하나님의 형상, 하나님 앞에서 존엄, 하나님과 교제함, 관계성이 있음
비기독교적 관점 : 사회적 관계를 갈망하는 인간, 이 본성은 어디서 왔을까? 부모와의 관계, 친구와의 관계 등등
ㅇ 영미식 보수주의에서 말하는 '공동체'의 정의
보수주의자의 공동체는 그냥 모인 인간 모임이 아니다. 이 공동체는 목표 지향적이며, 실제적이고 현실적이다. 삶에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치며 공동체의 이익과 나의 이익이 부합한다.
구체적인 예로는 교육, 사법, 행정, 경찰, 도로 유지보수, 병원, 학교 운영(학부모 모임)와 같은 이익을 위한 모임도 있고, 자선 그 자체를 위한 모임도 자선을 목표로 모인 공동체에 해당된다.
ㅇ 공동체에서 개인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이러한 공동체에 편입된 사람들은 공동체의 방향과 결정에 대해 ‘개인'으로서 존재감이 드러나게 된다. 그리고 개인으로 이루어진 공동체는 그 결정에 책임을 진다. ‘개인'과 ‘개인'들이 모여 ‘공동체'가 되고, 그 공동체의 방향을 각 개인들이 합의를 통해, 자발적으로 결정한다. 이 과정에서 개인의 선택과 결정이 드러나기 때문에, 공동체에 참여하는 개인의 도덕성이 고취될 수 있다. 또 선택에 대한 책임을 학습하여 능동적인 시민의식을 함양할 수 있다.
개인의 공동체 참여는 큰 “책임감과 도덕심"을 불러 일으킨다. 특별히 미국에서는 신 앞에서의 양심으로 town 공동체에 참여한다. 개인에게 관련된 일에 있어서 자유롭고 하나님 앞에서 책임을 진다. 자신의 이익에 관해 최선의 판단자이며, 공동의 이익에 배치되지 않는 한 행동에 있어서 규제를 받지 않는다. 이것은 합중국 전역에서 보편적으로 인정되는 원칙이다. (미국의 민주주의)
ㅇ 공동체가 부재한 개인은 국가로부터 어떤 영향을 받게 되는가?
공동체성이 결여된다면 개인간의 교제가 부재하다.
개인이 없는 집단에 속한 인간들은 국가와 사회가 자기에게 암시하고 부여한 정의를 쉽게 받아들인다. (ex. 소련의 스탈린 체제)
미혼모를 도와주는 사례를 봐도, 국가에서 운영하는 것은 국가는 추상적이기 때문에 결국 물질적이고, 공무원들의 행정력에 의지하게 되는데, 진정한 공동체에 의한 도움은 개인과 개인의 사이가 가깝기 때문에 정서적이고 실제적인 도움, 자립을 위한 도움이 될 수 있다.
관계성을 본능으로 가지고 태어난 인간은, 관계 안에서 자기를 비추어 생각하고, 나를 정의한다. 속한 공동체의 성격에 따라 다양한 역할과 존재론적 의미를 가질 수 있다.
ㅇ 사회주의자의 '공동체'와 보수주의자의 '공동체'는 어떻게 다른가 ?
공화국 | 집산주의자 | |
공공이익 | 민간, 지역이 자발적으로 이익을 추구함 | 대중국가가 주체가 됨 (뉴딜정책, 마스크 배포 등) |
ㅇ “잘 훈련된 사람들이라 해도 전통적 의무들과 제도들을 빼앗긴 대중에게 정의, 번영, 평온한 삶, 품위 있는 보살핌을 제공하지는 못한다. 그런 실험은 이미 고대 로마에서 또렷이 진행된 적이 있었고, 그 결과는 재앙이었다.”(상동, p.77)
잘 훈련받고 교육받은 귀족들을 중심으로 한 원로원, 집정관 등을 중심으로 로마 공화정은 운영되었다. 로마제국은 식민지를 끊임 없이 확장해서 세금을 늘려갔는데, 새로운 식민지 정복 속도가 떨어지자 내부 권력자들간 이권 쟁투가 벌어졌고, 귀족들이 소유한 대농장(라티푼디움)을 계속 정복하며 노예제도가 발달해 로마시민 대부분을 차지하던 자유 소농의 몰락을 초래했다. 나라는 부강해졌지만 시민들은 비참해진 것이다. 그라쿠스 형제(평민 출신 귀족 가문)가 토지 개혁을 추진했지만 기존 귀족 계급 과의 정치적 암투 속에 숙청된다. 이런 사회 분위기 족 결국 로마 공화정은 몰락의 길을 걷는다.
ㅇ 사회 공동체가 활발할수록 비대해지려는 정부를 견제할 수 있다.
사회를 단순하게 이분법적으로 나누고 전체주의 통치를 노리는 급진 개혁가의 출현을 강력히 막아내는 예방 수단이 된다. (p.75) 이원론적인 것들은 대립 구도가 쉽게 형성되지만, 이해관계가 다양해지면 변수 또한 많아져 전제주의적 통치를 하기 어려워진다.
정부가 ‘저희가 나서서 도와드리겠습니다' 할 때, ‘이미 하고 있는데요' 라며 이런 자발적 조직들이 미국의 인민민주주의화를 자연스럽게 억누른다.
“토크빌은 공동체에 봉사하고 공동체를 증진시키려는 미국인의 순수한 욕구가 유럽인보다 강력하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상동, p.72)
“미국에선 공동체를 건강하게 만드는 영향력들의 힘이 아직 강력하다. 그 어느 나라보다 미국에는 자발적인 민간 단체들이 많다.” (상동, p.75)
(참고) 미국의 주의 정치와 행정은 유기적으로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 있다. 가장 하부형태인 타운(마을)과 그 위에 있는 카운티(군) 그리고 가장 상부 형태인 주. 아메리카의 타운은 여러 사람들이 모여서 저절로 형성된 자연발생적인 마을.
타운은 그 어느 나라의 마을보다도 자율과 자치를 기반으로 하고 있다. 타운의 자율성과 자치는 합중국의 사회를 이해하는 기반.
타운에서는 무엇보다도 주민들이 직접 권리를 행사한다. 타운에서는 대의제도나 자치협의회 등이 없다. 공공업무의 가짓수도 아주 많으며 자세하게 분화된다. 행정권이 매년 선출되는 사람에게 주어져도 그는 주민들의 타운집회에서 결정된 일들을 맡아서 수행할 뿐이다. 대표에게는 권한이 없다. 권력의 원천은 주민들이다. 타운에는 19개의 직책이 있고, 가난한 사람들도 봉사할 수 있도록 업무의 양에 따라서 보수가 주어진다.개인들은 자신에게 관련된 일에 있어서 자유롭고 단지 하나님 앞에서만 책임을 진다. 그러므로 각 개인은 자신의 이익에 관해 최선의 판단자이며, 공동의 이익에 배치되지 않는 한 행동에 있어서 규제를 받지 않는다. 타운들은 주와 관련해서 수행해야 하는 일정한 의무들이 있다. 경찰규정, 도로나 공공의 교육제도 세금 등에 관해서 주어지는 규정들이 그것이다. 타운 정신의 중요한 두 가지 요소는 자주와 권위다. 뉴잉글랜드 주민이 자신의 타운에 애착을 갖는 것은 그곳에서 태어나서가 아니라 그곳이 자신의 수고로 얻은 자유로운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카운티에는 공동의 전통이나 자연적인 연대의식이 없다. 모든 타운들이 공통적으로 필요하다고 느끼는 것들이 카운티에 있게 된다. 카운티의 행정관리들에게는 제한된 권한만이 부여된다. - 『다시보는 미국의 민주주의』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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