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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리뷰] 부흥의 여정 : 크리스천 필독서

by 키욤 2022. 11. 11.

 

부흥의 여정, 김우현 감독님, 규장

1. 들어가며

크리스천이라고 말할 수 있는 그대(이 의미는 스스로가 안다), 이 책을 꼭 읽길 바란다! 영에 귀중한 도움이 될 것이다 ! 

우리나라에 어떻게 복음이 들어왔는지, 그리고 그 복음은 우리를 어떻게 변화시켰는지, 그리고 그때 온 세계와 특별히 한국에 어떤 부흥이 있었는지, 그 부흥으로 인해 우리는 어떤 복을 누리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선물로 받은 복을 다시 어떻게 나누어야 하는지 이 땅의 지성있는 크리스천이라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저는 읽고 또 읽고, 감동 속에 이 책을 마음에 심기로 작정했다. 부족하나마 나 자신의 복기를 위해, 또 이 글을 볼지 모를 누군가를 위해 내용을 적고 나누어 본다 :)

 

2. 1904 영적 대각성 운동

영적 대각성 운동은 1904 영국 '웨일즈', 1905 인도 '카시', 1907 미국 LA '아주사', 그리고 1907 한반도 평양 에서 연쇄적으로 이루어진다. 이 책의 저자이자 다큐멘터리 감독인 김우현 감독님은, 직접 그 땅들을 밝고 소회와 감동을 나눈다.

첫번째 웨일즈 모리아 교회를 방문한다. 웨일즈 교회의 신학생 이반 로버츠는 부흥의 주역이 되어 친구들과 함께 "주여, 우리를 굴복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꺾어 교회를 회복시키시고 세상을 구하옵소서."라는 기도를 한다. "가난 때문에 저주와 욕설을 입에 달고 살던 아이들이 부흥을 통해 변화되어 성경과 기도에 전념했으며 예배 후에도 자기들끼리 모여 기도회를 가졌다. 특히 뱅고어라는 지역에서는 어린이들 사이에 강력한 성령의 역사가 일어났다. 아이들은 어디서나 모여 기도했으며 수많은 역사들이 일어났다. .. 이제 겨우 말을 하기 시작한 한 아이가 "오! 저를 구원해주세요. 예수님의 피로..." 하며 울며 간구했다"

(웨일즈부흥 연구자 토마스 필립의 부흥Revival지)

 

그리고 이 부흥의 배경에는 대천덕 신부의 할아버지, 토레이 박사가 있다. 무디성경학교장이었던 토레이는 세계 전역을 다니며 부흥회를 인도했는데, 이중 웨일즈 땅에도 큰 복음 사역이 있었다고 한다. 그리고 이 부흥의 불씨가 웨일즈 대각성 운동을 이끈다.

두번째 인도에선 라마바이가 중심이 되어 고아와 과부를 돌보며 그 기도 운동을 중심으로 부흥의 불길이 일어난다. 한편에서는 썬다 싱이 그리스도를 만나 히말라야, 인도, 네팔, 중국 등까지 복음의 영향이 이어지며, 그는 맨발로 산천을 돌며 전도하러 다닌다. (그리고 이 영향으로 우리나라의 최춘선 할아버지도 맨발로 전도를 하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으신다. 할아버지는 그리스도, 이사야, 성 프랜시스, 썬다 싱, 아바쿰 등을 메모에 적어두었고 그들의 발자취를 따라 맨발로 모든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신다. 그리고 할아버지는 늘 "사명은 각자 각자요"라고 말하며 본인의 사역의 이유, 당신의 사역의 이유는 주께서 주시는 것이라고 말씀하신다.)

세번째 LA 아주사에선 흑인 애꾸 비천한 신분인 윌리암 조셉 시모어 에게 성령의 불이 허락된다. 그리고 그의 성령 운동은 백인들에게 배척당하긴 하지만 샌프란시스코 대지진을 4일 앞두고 부흥의 불길이 불타오르게 되며, 그 시련을 견뎌낼 힘을 갖게 된다. 그리고 LA의 그 불은 한반도를 향해 온다. 

 

3. 1859

1859년은 다윈의 '종의기원'이 완성된 해이다. 그리고 교회에는 엄청난 위협으로 다가온다. 반대로 유물론자 입장에서는 다윈의 진화론을 적극적으로 환영하여 인간 만상에 신적인 요소를 모두 해체하고 진화론을 유물론에 적용해 엄청난 이론을 발달시킨다. 칼 마르크스 또한 정치경제학 비판 책을 출간하며 유물론을 학문적으로 더욱 강화해간다. 그리고 영국 공리주의자 밀의 실용주의 사상이 기독교계를 침투해 '나의 만족과 유익이 삶의 제일 이유'라는 말로 복음의 본질을 약화시킨다. 누구든지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라오라는 예수님의 말과 반대로, 나에게 좋지 않으면 거절할 수 있는 실용주의적인 판단 근거가 마련된 것이다. 

그 반대로, 하나님은 1859년을 그냥 두지 않으시고 영국, 미국, 아프리카, 호주, 인도네시아 등 여러 나라에서 강력한 성령의 불길이 타오르게 하셨다. 1857년 아일랜드 코너라는 작은 마을에서 시작된 기도모임은 조지 뮬러의 책을 읽으며 성령이 인도하는 삶을 간구했고, 1859년 부흥의 불길이 타올랐다. 그리고 이 불은 웨일즈와 스코틀랜드로 이어져간다. 

 

4. 토레이 박사

토레이 박사는 세계 각지에 선교사를 배출한 걸출한 부흥 강사이다. 그의 성령론은 한반도 평양 대부흥까지 영향을 미쳤는데, 그 증거로는 평양 대부흥에서 발견된 성령에 대한 설명과 그 성령세례의 간증 내용들이다. 평양신학교의 교재 <성령론, 가옥명 선교사>에도 "성령세례의 핵심은 성령의 열매와 함께 봉사의 능력에 두고 있음을 확인할 수 있다." 또, 하디의 기록에 따르면, "함흥에서 있었던 부흥 집회에서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나타났고 그곳에 참석하여 성령세례를 간구한 한 한국 여인이 전에는 결코 알지 못했던 능력의 참 비밀을 알고 하나님께 완전히 굴복하였다." <매컬리, 부흥의 열매들>

 

우리가 성령과의 관계와 성령께서 우리 마음속에 행하시는 역사를 알려면 성령이 한 인격자이시라는 것을 확실히 알아야 한다. 세상에는 성령에 대해 오해하고 그릇된 생각을 가진 사람이 많다. 그래서 공연한 열정과 열심을 내서 광신적인 상태에 빠지게 된다. 이와 같이 되는 중요한 원인은 성령을 한 인격자로 인식하지 않고 그 역사하심만 알려고 하기 때문이다. - R.A. 토레이 <성령론>

 

이 성령은 전세계 전역에 퍼져나가 한사람 한사람의 인격의 변화를 일으키며, 나를 비우고 성령께 나를 성전으로 내주는 강력한 변화의 씨앗이 된다. (나는 이 부분을 읽으며 하나님, 저를 비워 성령의 성전 되도록 해주십시오. 조용한 기도를 올리었다.)

 

5. 토마스 선교사

로버트 저메인 토마스

토마스는 웨일즈 출신으로, 평양 대동강변에서 순교한 선교사이다. 토마스가 런던 선교회에 보낸 보고서에 이런 내용이 들어있다.

"영국을 떠날 때, 처음 쓰는 편지가 이런 것이 될 줄은 몰랐습니다. 사랑하는 아내 캐롤라인이 지난달 세상을 떠났습니다... 더이상 글을 써 내려가지 못하겠습니다." 그는 중국에서 선교하다가 아내를 잃고 한국으로 가지 말라는 파송 본부의 명령을 어기면서도 조선 땅으로 갔다. 그리고 조선 땅에서 순교하였다. 평양 과기대 건축 중 발견한 토마스 종탑으로 유추해 그곳이 토마스 기념교회(조왕리교회) 였음을 알게 되고, 토마스를 통해 평양에 복음이 들어왔기 때문에 평양 사람들이 이것을 기념하기 위해 그의 이름을 단 기념 교회를 만들었던 것이다. 

책 206 페이지에 보면 박용규 교수님이 말씀하신 내용이 나온다.

"1866년 토마스 선교사가 순교하면서 성경들을 전해 주었는데 그 성경을 전해 받은 사람들 중 하나가 그를 죽였던 박춘권, 그리고 박춘권의 조카였던 이영태 입니다. 이 이영태라는 사람이 그 성경을 읽고 예수를 믿어 숭실학교를 졸업하고 레이놀즈 선교사의 조사(전도사)가 되어 성경의 3분의 2를 번역할 때 큰 기여를 합니다. 토마스가 순교하기 전 최치량이라는 아이에게도 성경을 3권을 주었는데 금서인 성경을 가지고 있던 최치량이 겁이 나니까 이것을 평양 감영 경비였던 박영식(성경을 수거하는 책임)에게 건네준 겁니다. 이 박영식이 성경 3권을 가져가 자기 집에 도배를 합니다. 그러니 그 어디를 봐도 하나님 말씀이다보니 말씀과의 만남이 그 현장에서 이루어진 것이지요. 결국 박영식이 성경을 도배했던 그 집이 이후에 평양 최초의 교회인 널다리골교회가 됩니다. 그 널다리골교회가 장대재교회가 됐고, 후에 장대현교회가 된 것이지요. 이 장대현 교회에서 1907년 1월 14일 놀라운 성령의 역사가 일어난 겁니다. 그러니 토마스의 죽음과 평양 대부흥은 모종의 연관이 있는 것이지요." (지금 장대현교회 자리엔 평양 소년 학생 궁전이 세워져있다.)

 

6. 평양 사람들 

1890년, 평양 시에 마펫 선교사가 들어간다. 그리고 마펫 선교사에게 도전을 받은 김종섭 이라는 사람이 변화되고, 이어 김종섭의 친구였던 한 남자는 '도'를 구하며 많은 날 기도하다 복통에 시달리고, 기도하던 중에 우레와 같은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회심한다. 그는 바로 평양대부흥의 주역, 길선주 장로 였다. 길선주가 장로가 된 널다리골 교회는, 1866 제너럴셔먼호에 성경을 타고 동승한 선교사 토마스가 뿌린 성경을 벽지로 바르고, 그 말씀으로 변화된 사람들이 모인 교회이다. 당시 제너럴셔먼호를 구경하러 갔던 12살의 최치량은 어떤 서양인이 강둑으로 기어올라 "예수!" 라 외치며 많은 책을 뿌리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곧 목이 잘려 순교하게 된다. 그렇게 뿌려진 책은 소년 최치량이 줍고 최치량은 박영식에게 책을 가져다주고, 박영식은 그것을 벽지로 사용한다. 그리고 어른이 된 최치량은 그 집을 구매하여 주막으로 사용한다. 당시 토마스 선교사가 죽고 27년 후 1893년 서양에서 마펫, 그래함 리, 스왈른이 평양에 찾아와 이 주막에 묵다가, 벽에 온통 한자 성경으로 도배되어있음을 보고 놀란다. (아니 내가 선교하러 왔는데 벽지가 성경이라니!) 찾아온 선교사들이 이 성경의 출처를 조사하다 최치량은 이것이 하나님의 일하심임을 보고 감동하여 마펫에게 세례를 받는다. 그리고 그는 장대현교회 설립의 큰 공헌자가 된다. 

토마스의 선교를 통해 많은 이들이 성경을 읽었고, 우리가 알지 못하는 사람들이 예수를 믿었고, 그 역사로 하나님은 후에 온 선교사들을 통해 더 큰 일을 행하셨고, 선교사를 핍박하던 이기풍이라는 사람이(돌을 던져 마펫의 턱뼈를 부러뜨리기도 하였다) 제주 선교사가 되기도 하였다. 하나님은 토마스의 순교를 받으시고 평양에 밀알이 된 그를 통해 새 일을 행하신다.

 

토마스의 목을 벤 박춘권은, 30년 후에 토마스가 죽기 직전까지 성경을 내밀었던 그 장면, 서양인의 눈을 자꾸만 기억했다고 한다. 그런데 30년 후에 집 근처에 서양인 선교사들이 널다리골 교회를 세운다. 그는 그 서양인을 죽인 고통을 안고 참회하는 심정으로 교회에 찾아온다. 그는 회심하여 성도가 된다. 토마스를 죽인 그 사람까지 주님은 은혜로 안으신 것이다. 

 

7. 조선 밖에서 부흥을 준비하다

최초로 한글성경을 번역한 존 로스 선교사, 그는 서른살 즈음 스코틀랜드에서 조선 선교를 위해 만주에서 기다렸다. 로스 또한 사랑하는 아내를 선교지에서 잃는다. 그러나 그는 최초로 한글 성경을 번역하고, 교회를 (소래교회) 세운다. 로스는 고려문(조선 의주와 만주의 국경문)근처에서 토마스가 순교한 1866년 이후 동료 번즈 선교사와 함께 전도했다고 전해진다. 번즈, 그는 스코틀랜드의 윌리암 번즈 로서 스코틀랜드 부흥의 위대한 주역이다. 그는 영국의 부흥의 결실을 뒤로하고 중국과 조선 땅으로 나아갔다. 그는 1866년 스코틀랜드의 후배 선교사인 윌리암슨과 함께 북부 지역 순회 전도에 나섰다가 추위 속에 6개월만에 1867년 10월 만주로 들어갔다. 그는 "하나님께서 선한 일을 계속하실 것이니 아, 아무 걱정 없도다." 유언을 남기고 하나님 품에 안기었다. 그후에 번즈와 고려문에서 함께 사역했던 윌리암슨이 토마스에게 성경을 주어 그를 조선에 보낸 사람이다. 토마스가 죽자 하나님은 윌리암슨과 번즈를 만주로 보내 조선에 복음이 계속 뿌리내리게 하셨다. 

 

그리고, 토마스가 오기 전 30년 전에 조선 땅에 전도하러 왔던 독일 출신 선교사 귀츨라프 가 있었다. 그는 충남 서산에 고대도에 도착해 성경을 전하고자 했으나 조선의 반대에 부딪혀 돌아갔다. "이 작고 보잘것없는 시작일지라도, 하나님께서 축복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성경은 우리에게 가르치고 있다. 더 좋은 날이 이 조선 땅 위에 곧 다가오기를 소망하자."(귀츨라프)

이 귀츨라프도 아내를 잃고 중국에서 선교하다 조선으로 방향을 틀었다. 토마스도, 로스도, 귀츨라프도 아내를 잃은 상실감과 애통함이 조선을 향한 선교로 연결되었다. 소중한 생명들의 순교로 이어진 우리 땅의 복음을, 우리는 값싼 것으로 여기면 안될 것이다. 

 

8.  부흥의 시작 

제임스 게일

캐나다 출신 게일은 한국에서 영어사전을 편찬하고, 천로역정 등 영문 고전을 번역하는 사역을 했다.

로버트 A. 하디

그리고 1903년 성령 집회 중 회개하고 성령의 영향을 나누다가 1907 평양 대부흥을 일으켰던 하디 선교사는 게일의 후배였다. 길선주는 그리고 이 천로역정을 통해 회심하고 예수를 믿는다. 1907년은 우리에게 최대 위기였다. 동학운동, 청일전쟁, 러일전쟁이 우리 땅에서 벌어졌고, 북부 지역은 선교사들과 성도들이 다 흩어질 위기에 처했으며, 대한제국의 위기를 알리기 위해 떠난 상동교회 이준 열사가 자결하며, 고종황제가 일제에 의해 폐위됐던 암울한 시간이었다. 그때 성령님은 사람들에게 찾아오셔서 성령으로 비추셨다.

 

1907년 장대현교회에서 악한 영들의 방해로 절망하고 돌아간 성도들과 선교사들은, 1월 14일 다시 월요 정오 기도회에 모여 기도하였다. 그들은 전날처럼 냉랭하거나 낙담하지 않도록 하였다. 그들은 다시 성령의 임재를 사모하였고, 전날 밤의 공허함이 그들을 더욱 낮아지게 하였고, 상한 심령이 되어 울부짖게 했다. 그들을 통회 자복하며 다시 하나님께 성령 강림의 역사가 임하도록 간구했다. 

 

"한 사람 한 사람씩 일어나 자기 죄를 고백하고 고꾸라져 울었다. 그리고 자기가 죄인이라는 완전한 고통에 주먹으로 바닥을 쳤다. 나의 요리사는 회개하려고 애쓰면서 "목사님 나에게도 희망이 있는지요, 용서받을 수 있는지요." 그리고 나서 바닥에 엎드려 울고 또 울며 거의 고통 중에 부르짖었다." (그래함 리, 성령이 평양에 어떻게 오셨나)

 

그리고 어떤 자들은 노비들에게 함부로 대한 것을 회개했다. 자기의 재산을 팔아 노비 여종을 수양딸로 입양하고 교육을 시키겠다고 했다. 하나님의 영이 깃들자 노비들을 풀어주겠다고 한 양반들도 있었다. 성령 운동을 통해 나를 비우고 낮아지고,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며, 가장 가까운 이웃인 사람들을 존중하는 생각이 깃들게 된 것이다. 서로를 하나로 사랑하고 존중하고 평등할 수 있다는 생각이 성령 세례와 함께 퍼져나갔으며, 그 사회의 균열은 근대 대한민국으로 나아가는 초석이 된다. 

 

책은 마지막 이 말씀으로 마무리된다. (292페이지)

 

그런즉 너희는 하나님께 순복할지어다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

하나님을 가까이 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가까이 하시리라

죄인들아 손을 깨끗이 하라 두 마음을 품은 자들아 마음을 성결케 하라

슬퍼하며 애통하며 울지어다 너희 웃음을 애통으로, 너희 즐거움을 근심으로 바꿀지어다

주 앞에서 낮추라 그리하면 주께서 너희를 높이시리라 (약 4:7-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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